언론의 사라짐


 
* 독일문화이론 과제

 

죽음 뒤에 숨은 언론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고인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둘러싸고 이런 저런 비판들이 오가고 있다. 현 정부와 이명박 대통령의 정치 보복이네, 검찰의 무리한 수사 때문이네, 내 잘못이네 등등. 입이 달린 자라면, 아니 키보드를 두드릴 수 있는 자라면 누구나 한마디씩 거들며, 자성과 비판의 목소리를 사방에서 쏟아 내고 있다. 죽은 자는 말이 없고 산 자의 온갖 목소리들만 세상에 남아 떠들썩하다. ‘원망하지 마라’ 는 고인의 유언은 공허하게 그 목소리들 사이를 배회하고 있다. 그리고 떠들썩함의 뒤에 숨어 온갖 목소리를 뱉어 내고 있는 채널로써 ‘언론’이 존재한다. 텔레비전, 라디오, 신문 등의 뉴스에서는 쉴 새 없이 그 목소리들을 실어 나르고 있다. 뉴스와 시사 프로그램에서, 기사와 사설에서, 그리고 평범한 시민들의 인터뷰에 이르기까지 비판과 자성의 목소리는 전파와 지면을 통해 널리 퍼져가며 고인의 빈자리를 메우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리고 언론은 그 뒤에서 마치 그 누구도 아닌 것인 마냥 몸을 숨긴 채 목소리들을 실어 나르기에 바쁘다. 아니, 바쁜 척 하고 있다. 마치 언론 스스로는 아무 잘못도 없다는 듯이, 떠들썩한 껍데기를 만들어내 그 뒤에 스스로를 숨기고, 또 지우려 한다. 하지만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에 대한 책임에서 언론은 절대 자유로울 수 없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를 둘러싸고, 검찰의 무리한 수사 방식에 대한 비판과 현 정부의 정치 보복이라는 비판이 사회 곳곳에서 쏟아져 나왔지만, 언론은 그 목소리들을 외면하고 축소했다. 조중동을 비롯한 보수 언론은 말할 것도 없이, 흔히 진보적이라 여겨지는 언론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더 높은 잣대를 들이대며 수사에 동조하고, 모욕주기 식 보도를 일삼기까지 했다. 한겨레는 사설 제목으로 “노 전 대통령 주변의 추한 모습” 이라는 표현도 서슴치 않았고, 경향신문은 칼럽에서 “노무현 당선은 재앙의 시작이었다고 해야 옳다. 이제 그가 역사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이란 자신이 뿌린 환멸의 씨앗을 모두 거두어 장엄한 낙조 속으로 사라지는 것” 이라는 모욕적인 비판을 가하기도 했다. 물론, 수사 과정에서 드러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측근 비리는 가히 충격적이었고 비판해 마땅하지만, 진보적이라 여겨지는 언론들마저도 이처럼 비이성적인 비난의 표현을 쏟아냈다는 점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에서 언론의 책임을 배제할 수 없음을 시사한다. 소위 진보적 언론들에 대한 비판의 잣대는, 그래서 더 높아질 수밖에 없다. 만날 때리던 아빠가 또 때리면 그러려니 하며 요령껏 맞겠지만, 오냐 오냐 하며 보듬어 주던 엄마가 어느 날 갑자기 몽둥이를 들고 때리면 서러움과 충격에 저항도 못하고 맞아야 한다. 진보적 언론들은 행여 노무현 전 대통령의 도덕적 문제에 대해 제대로 된 비판을 가하지 못하면, 나름의 ‘중립성’을 훼손될지도 모른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렸을 것이다. ‘도덕성’이라는 잣대에서 ‘노무현’도 예외일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이 시대의 진정한 비판적 언론으로서 자리 잡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을 것이다. 순하디 순한 아이가 학교 일진 그룹에 들어가서 살아남기 위해, 더 악랄하고 잔인한 폭력과 언행을 일삼는 것과 다르지 않다. 대개의 영화나 드라마에서 사람을 죽이는 것은 힘없고 나약한 심성을 가진 조직의 말단 조직원이나 새내기 조직원이다. 물론 여기에서 그들 진보 언론을 이해하고 싶은 것은, 잘 보이기 위한 대상이 일진의 대가리인 이명박 대통령과 정부가 아니라, 대다수 국민들이었다는 사실이다. 아마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이 알려진 순간 가슴이 철렁하며 차가워지고, 훗날 뜨겁게 슬퍼했을 이들 역시 진보 언론이다. 여기에서 조폭의 똘마니인 조중동과 보수 언론의 잘잘못은 말할 필요조차 없다. 사람을 죽이고도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는 이들에게 도덕 따위가 먹히기야 하겠는가.

 

이처럼 언론의 보도 태도뿐 아니라,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언론의 이중적 태도 역시 비판받아야만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친인척 비리에 대한 수사가 이루어질 때, 그 비판과 비난의 선두에서 가장 신랄하고 잔인하게 영향력을 행사한 것은 언론이었다. 그런 언론이 이제 와서, 스스로의 잘못을 반성하기는커녕 모든 잘못을 남 탓으로 돌리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양심은 있어서 “노무현을 외면한 국민의 잘못”이라고 까지는 하지 않아 다행이다. 국민들은 누군가 ‘광기’라고 표현했을 정도로 뜨거웠던 추모의 열기로 다하지 못한 반성을 하고 있다. 그리고 정부와 검찰은 하루가 멀다 하고 언론과 국민으로부터 비판과 압력을 받고 있고, 임채진 검찰총장은 자진 사퇴 했다. 물론 이명박 대통령과 정부 여당은 아직도 무엇이 잘못인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언론이 취하는 태도가 이들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언론은 이 떠들썩한 비판과 반성의 시기에 “난 매개자이자 채널일 뿐이야” 라고 선포하며 자신의 존재를 숨겨버린다. 언론은 분명 실재하는 권력이자 담론의 진원지이지만, 이들은 그 사실을 숨기고 비매개된다. 그리고 수용자들은 분명 언론의 매개를 인지하고 있지만, 어느 순간 그 존재를 잊어버리고 현실과 즉자적으로 조우한다. 이것이 현 정국에서 언론이 살아남기 위한 방법이고, 이 전부터 계속 되어 온 생존 전략이기도 하다. 특히, 특정한 정당이나 정치인을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등의 매우 뚜렷한 정치색을 지닌 외국의 언론들과는 달리, 한국의 언론은 최소한의 중립과 공정보도라는 원칙을 중요시 여긴다. KBS, MBC, SBS와 같은 공중파 방송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조중동 조차도 특정 정치인이나 정당을 지지한다고 ‘대놓고 말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그 공정보도라는 것이 실재로 중간자적 입장에서 중립을 유지하는 방식이 아니라, 스스로 ‘사라짐’으로써 유지되고 있다. 즉, 특정한 정치적 입장을 지지하거나 편을 들면서도 그렇지 않은 것처럼, 마치 그것이 ‘사실’이고 ‘중립’인 것처럼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리를 두고 ‘파렴치’하다고 이야기 하는 주체는 분명 조중동이라는 언론이지만, 그들은 그것이 마치 사실인양 기사를 쓴다. 스스로 사라짐으로써, 수용자 대중과 사건의 진실(이라고 착각하는) 사이에 아무 것도 놓이지 않은 것처럼 보임으로써, 언론은 그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 앞에서도 언론은, 지금껏 그래왔던 것처럼 스스로를 숨기기 바쁘다. 그래야만 이 떠들썩한 심판의 덫에서 빠져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 매개하는 대중

 

비단 지금의 서거 정국뿐만 아니라, 언론의 이와 같은 비매개 전략은 한국 사회에서 이미 만연해 있고, 수용자 스스로도 무비판적으로 이러한 언론의 기만을 허용해왔다. 벤야민의 영화관에서 비판적 주체로서의 ‘산만한 대중’은, 플루서의 영화관에서 무비판적인 ‘선으로 반죽된 대중’이 되어버렸다. 지금의 대중은 대개가 플루서의 영화관에서 무비판적으로 현실을 바라본다. 하지만 인터넷의 발달을 비롯한 매체 기술의 발전은 또다시 대중의 발길을 벤야민의 영화관으로 인도하고 있다. 이제 더 이상 새롭지 조차 않은 블로그나 UCC 등의 1인 미디어의 등장은, 전혀 새로운 방식의 수용자와 수용태도를 만들어 낸다. 특히 지난해 촛불 시위 현장 중계의 경우, 기성 언론이 보여주지 못하는 진실을 보여주는 대안매체로서 1인 미디어의 가능성을 보여준 예라고 볼 수 있다. 기성 언론이 각각의 입장에 따라 현장과 진실을 입맛에 맞게 재편집하고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주려 했다면, 1인 미디어는 기성의 언론이 보여주지 못하고 보여주고 싶지 않아 하던 진실을 찾아 거리를 누볐다. 심지어 기성 언론이 1인 미디어의 콘텐츠를 가져가 재생산하는 경우도 허다해진다. 그리고 기성의 언론이 그렇게 현실과 수용자 대중 사이를 특정한 이데올로기나 입장에 따라 매개하면서 겉으로는 스스로를 사라지게 만드는 전략으로 수용자를 기만했다면, 1인 미디어는 스스로를 비매개함으로써 오히려 진실을 보여주게 되는 전혀다른 방향으로 나아간다. 즉, 기성 언론의 비매개 전략은 대중을 기만하기 위해 존재하지만 1인 미디어의 비매개 전략은 대중 스스로가 진실을 보기 위해 존재한다. 대중은 이제 진실과 사건을 스스로 매개함으로써 기성 언론의 기만에서 벗어나려고 한다. 과연 수용자 대중은 새로운 매체 환경의 도래와 함께 또 다시 현실 인식의 비판적 주체로 역사의 전면에 등장할 수 있을까.

 

 

회복

 

이처럼, 1인 미디어와 적극적이고 비판적인 수용자의 등장은 기만적인 기성 언론에 대한 대안으로써 기대를 갖게 한다. 하지만 1인 미디어의 등장이 곧 기성 언론이 갖는 위치와 역할을 대체할 수 있을 거라고는 기대할 수 없다. 여전히 공중파 텔레비전과 거대 신문들은 무시할 수 없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기성 언론이 수용자 대중을 기만하고 있는 것이 현실일지라도, 그렇다고 해서 그들을 무시하거나 버릴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무리 애써 등 돌리려고 해도 언론은 여전히 뒤통수를 내려치고 등을 떠밀고 있다. 공중파 방송과 유력 보도 채널의 사장이 대통령의 낙하산 인사라고 해서 해당 채널의 시청률이 떨어지지는 않는다. 조중동이 아무리 왜곡된 기사를 진실인 마냥 보도한다고 해도 여전히 시장 점유율은 절대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외면할 수 없다. 낙하산 인사로 인해 정부에 비판적인 프로그램과 진행자가 별다른 저항 없이 교체되고, 조중동의 왜곡 보도로 인해 선의의 피해자가 생겨남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그 통제와 왜곡의 칼날은 어느 순간 대중들 스스로의 목 앞에 놓이게 될 것이 분명하다. 대중은 언론을 통해 세상 혹은 타자와 소통하고, 언론이 주체의 의식을 프레이밍한다. 따라서 언론의 통제와 왜곡은 곧 수용자 주체의 인식에 대한 통제와 왜곡을 불러온다. 부엉이 바위에 섰던 이는 노무현이라는 한 인간이 아니라, 그로 대변되는 기만당하고 상처받는 수용자 대중 대다수였다. 지금과 같은 언론의 통제와 왜곡을 계속해서 좌시한다면, 부엉이 바위는 어느새 빨간 피로 뒤덮이게 될지도 모른다.

 

현 정권과 한나라당이 추진하고 있는 미디어 관련법은 그래서 더욱 위험하다. 왜곡 보도를 일삼는 조중동의 공중파 방송 및 보도편성채널 진출은 왜곡이 지면을 떠나 전파로 확장되는 왜곡의 전면화를 야기하게 될 것이다. 재벌의 공중파 진출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리고 KBS 공영방송법은, KBS에 대한 통제를 강화함으로써 정부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잠재우고, 권력의 나팔수로서만 기능하게끔 만들 것이다. 정보통신망법은 ‘사이버 모욕죄’를 무기로 인터넷을 통한 여론 형성을 차단하고, 지난해 촛불 시위와 같은 반정부적인 목소리의 등장을 원천 봉쇄하게 될 것이다. 이는 앞에서 언급한 1인 미디어의 가능성을 실질적으로 차단한다는 점에서 매우 위험한 법안이다. 비판의 수단조차 통제하겠다는 것이다. 이처럼, 미디어 관련법 개정안은 죽음 앞에서도 뻔뻔스러운 언론의 행태에 날개를 달아줄 뿐이다. 지금 당장은 이 미디어 악법을 막아내는 것만이 최소한의 저항 가능성을 담보해줄 수 있다. 그랬을 때, 거짓된 목소리의 뒤로 사라져버린 언론의 작태를 드러내 보여줄 수 있고, 대중은 진실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될 것이다. 누군가가 죽음으로써 이야기하려 했던, 그리고 해야만 했던 메시지를, 우리는 매개되지 않은 가슴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2009/06/09 20:39 2009/06/0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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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gelus Novus 
wrote at 2009/06/11 23:47
잘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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