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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의 역사, A History Of Violence,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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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 토리노, Gran Torino, 2008




*스포일러 주의

두 영화를 같인 시기에 볼 생각은 전혀 없었다. 크로넨버그와 린치를 매번 헷갈려 하며 봐왔던 영화들 중, 생각해 보니 크로넨버그의 영화는 단 한 편도 없었다는 생각이 든 건 올해 들어서였다. 하긴, 아무리 이름이 헷갈린다지만(?) 두 감독의 작품 스타일이 그렇게 비슷할 리가 없지. 어찌되었든, 지금껏 내가 봐 온 "데이비드"의 영화는(핀쳐는 제외해주시고) 모두 린치의 영화였다. 그래서 크로넨버그의 영화를 꼭 봐야겠다고 생각해왔고, <이스턴 프라미스>를 극장에서 놓친 후, <폭력의 역사>를 먼저 봐 줘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동나무 영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동나무 영감의 영화라고는 널리 알려진 <용서받지 못한자>나 이오지마 시리즈, <밀리언-달러 베이비> 밖에 보질 못했다. 늘 결이 곱고 대중성을 잃지 않는 좋은 영화를 만들어 내는 영감에 대한, 조금은 시류에 편승하는 애정을 보여왔지만, 극장에서 단 한번도 그의 영화를 보지 못했던 것이다. 영감의 연기 은퇴작이라 예측(?)되는 <그랜 토리노>를 피곤한 몸을 이끌고서라도 영화관에서 꼭 봐야했던 이유다.

어쨌든 이러 저러한 이유로 두영화를 같은 시기에 보게 됨으로써, 어떤 겹치는 지점들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은 나에게 행운이었다. 뭔가 숨겨진 행간을 나 혼자만 끄집어 내어 수첩에 뻬곡이 적어 두는 지금 이 순간의 쾌감.

두 영화의 축을 이루는 단어는 "폭력"이다. <폭력의 역사>는 제목에서부터 "폭력"에 대한 썰을 늘어 놓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이미 이 영화에 대한 숱한 평들을 들어 왔던 터라, 스토리의 이면에 깔려 있는 미국 사회의 폭력성에 대한 표상들을 나 스스로도 찾으면서 보려고 했었는데, 굳이 그렇게 하지 않고 영화의 가장 겉에 드러나는 이야기만으로도 충분히 많은 것들을 볼 수 있는 영화였다. 폭력이 폭력을 낳고, 폭력으로부터 주변을 지켜내기 위해 폭력을 행사할 수밖에 없지만, 그 것이 또 일상의 폭력성을 불러 오고. 마을 주민으로 대변되는 미국인들의 정서 깊숙이 뿌리 내린 '폭력'에 대한, 미국 사회의 폭력에 대한 언급들은 아직 사실 잘 모르기도 하거니와, 굳이 여기에서 끄집어 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랜 토리노>의 코왈스키 영감 역시 자신의 이웃, 아니 가족을 지키기 위해 폭력에 폭력으로 맞선다. 하지만 <폭력의 역사>에서 톰이 총에 총으로, 살인에 살인으로 맞선 것과는 달리, 코왈스키 영감은 일종의 '낚시질'(이라 표현하지만 꽤나 숭고하고 감동적인 장면이었다)을 통해 소극적 저항, 혹은 비폭력으로 저항한다. 여기에는 두 주인공의 삶에 배태되어 있는 개인사(라고 하지만 이 것은 분명 미국 사회의 역사에 대한 알레고리일듯)가 쌓아 온 기억의 차이가 작용한다. 톰의 과거는 스스로 폭력을 행사하고 살인을 서슴치 않았던 갱이자 킬러로서, 미국 사회에 만연한 폭력을 개인의 역사로 갖는다. 이에 반해 코왈스키는 '한국 전쟁'이라는, 미국 사회가 걸어 온 좀 더 거대한 역사적 맥락에서의 폭력을 개인사로 갖는다. 크로넨버그가 톰의 선택을 통해 말하고 싶었던 것은 사라지지 않는, 사라질 수 없는 폭력의 지루한 순환, 폭력 그 자체의 폭력성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동나무 영감은 코왈스키의 선택을 통해, 거대한 사회가 저지른 폭력과, 그 폭력을 배태한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속죄로서의 소극적 저항을 보여준 것이겠지. 크로넨버그는 여전히 현실적이고, 동나무 영감은 좀 더 무딘 모습이다. 그게 크로넨버그 영화의 힘이고, 또 이 것이 이스트우드 영화가 갖는 또 다른 차원의 힘인 것이다.

비슷한 설정, 비슷한 소재를 다른 느낌으로 풀어 내는 두 감독의 영화를, 같은 시기에 만나게 된 건 행운이다. 영화를 통해 받은 더 많은 느낌들을 풀어내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큰 아쉬움이랄까. 최근 '폭력'이라는 주제에 유난히 관심이 많았고, 또 모 세미나를 통해 폭력을 이야기하기도 했지만, 늘 아쉬웠던 것은 그 폭력이 폭력 그 자체가 아니라 '사회적 폭력'과 같은 간접적 결론-물론 그 것이 더 강력하고 직접적으로 행사되는 폭력이라는 주장도 있을 수 있겠지만-으로 흘러갔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폭력 그 자체가 갖는 폭력성에 대한 더 깊이 있는 고민이 내겐 필요했던 것 같은데 말이다. 그래서 그 세미나를 준비하던 선배가 크로넨버그의 영화를 다룬다고 했을 때 가졌던 기대가, 정작 세미나 당시에는 <베토벤 바이러스>에 드러나는 '사회적 폭력'으로 텍스트가 바뀌었을때 아쉬움이 조금 크기도 했다. 아무튼, 두 거장 감독의 결이 고운 영화를 통해, 쏟아지는 잠에도 불구하고 집중력 있게 폭력에 대해 고민할 수 있었던 건, 다시 한번 말하지만 '행운' 이었다.

<그랜 토리노>는 아직 영화관에 걸려 있다. 동나무 영감의 마지막 연기, 마지막 변론은 꼭 영화관에서 들어보길 바란다. 그리고 거기에서 말하지 못한 폭력 그 자체의 폭력성에 대한 또 다른 고민은 <폭력의 역사>를 통해 만나보시길. 아, 오랜만에 길어진 리뷰. 글발이 안 선다.
















2009/03/31 12:57 2009/03/31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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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ote at 2009/04/01 11:11
글발이 안서서가 아니라
난 스포일러를 피하기 위해 스캔하듯 읽었음
대체 난 외국사람 이름을 이리 못 외우는건지.
동나무는 참 친숙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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