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짝 열어 놓은 창으로 햇볕이 따갑게 떨어진다. 머리끝까지 홑이불을 끌어 올렸다가 이내 또 답답함을 참지 못하고 이불을 끌어내리고 고개를 반대로 돌려 누워버린다. 오전 내내 무색했던 알람의 행렬이 끝을 보이며 사라지는 시간, 일요일의 오후다. 역시나 돌아보면 불가능한 기상 시간을 휴대 전화에 기록해두는 쓸모없는 작업을 매주 토요일 저녁(혹은 일요일 새벽)이면 잊지 않고 계속 해왔다는 사실이 억울하기까지 하다. 가만히 돌아보면 매 주말(금요일 저녁에서 토요일까지)을 혹사시켜가며 보낸 적은 별로 없다. 밤새 친구들과 술을 마신 것도, 클럽에서 춤을 춘 것도 아닌데 일요일 아침에 자리를 털고 일어나는 것만큼 힘든 일도 없다. 다만 일주일에 한 번씩 꼭 찾아오는 빨간 날(!)의 저주처럼 몸이 추-욱 늘어지는 것이다. 왜 일요일은 오후가 되어서야 시작되는 걸까, 매번.
그러고 보면 일요일 오전에 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도 하나같이 재미없는 것들뿐이다. 채널마다 비슷비슷한 퀴즈 프로그램들이 번갈아가며 방송되고 기껏해야 인기 쇼프로그램을 재방송하는 것이 전부다. 역시 일요일은 인기가요와 함께 시작해 개그콘서트로 마무리 지어야 응당 일요일다운 것 아니겠냐며, 잃어버린 일요일 오전에 대한 이유를 방송국 편성 프로듀서 탓으로 돌려보려고 하지만 역시 이건 좀 억지다. 사실 소녀시대를 보자고 굳이 잠자리를 힘겹게 털고 일어나 텔레비전을 켜는 것은 아니니까. 아, 물론 잠결에 ‘소원을 말해봐’가 들려온다면 지는 척하고 일어날 의사는 있겠지만, 텔레비전을 켜놓고 자는 일은 거의 없다.
그래도 어쨌거나 저쨌거나, 일요일 오후는 대부분 텔레비전을 보면서 지낸다. 자리를 털고 앉아 이를 닦으면서 인기가요를 보고, 냉장고를 뒤져 남은 반찬거리로 저녁을 만들어 먹으면서 1박 2일을 보고, 내용이 이어지지 않는 주말 드라마를 애써 집중해서 보다가 개그 콘서트가 끝나면서 'Part time lover'가 흘러나올 때가 되어서야 내일이 월요일임을 깨닫고 괴로워한다. 오후만 있던 일요일의 다음은 파트타이머로 힘겹게 살아가야 할 또 하루, 월요일의 아침이다. 더디게 시작되고 반나절 만에 끝나버리는 일요일은, 어쩌면 다가올 월요일을 잊기 위해 짧은 시간동안 존재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일요일의 오후가 아니라 월요일의 하루 전. 일요일은 누군가가 몸서리치게 외로워해야 하는 시간이다. 그래서 그 하루의 시작을 유예하고 늦추려고 한다. 이불 속에 몸을 숨기고 창으로 새어 오는 햇볕을 피해 돌아눕고 무의미한 알람을 차례차례 꺼가는 습관적인 움직임들에도 이유는 있다. 누군가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일요일은 오후와 함께 시작되고, 그렇게 시작된 일요일의 일상은 월요일을 잊기 위한 몸부림들로 채워진다. 텔레비전은 일요일의 오후를 살아가는 대다수 사람들의 애처로운 습관의 이행을 대리해준다. 역시, 텔레비전에게도 잃어버린 일요일 오전에 대한 혐의가 없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을 하지 않고 쉬지만, 숨죽이고 있는 시간. 일요일 오후의 미묘한 정적은 삶을 지탱하기 위한 모든 이들의 숨죽임들이 쌓이고 쌓인 결과물이다. 그래서 누구도 일요일 오후를 원망하지 않는다. 잃어버린 일요일 오전을 찾으려 하지도 않는다. 다만 일요일만 있던 오후는 그대로 거기에 존재하는 이유의 시간, 바로 그 시간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