붙일 자유를 달라



*  중앙문화 기고문

지난 학기, 나는 주변의 한 지인으로부터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한 정당의 학내모임을 준비하고 있었고, 이를 알리기 위한 게시물을 부착하기 위해 학생지원처를 찾았지만 허가 도장을 받지 못했다. 특정 정당과 관련된 게시물에는 허가를 해줄 수 없다는 이유였다. 그 친구는 황당해 하면서도 어쩔 수 있냐며 ‘허가받지 못한’ 게시물을 붙이기 위해 학교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나 역시 예전에 미디어법에 관한 토론회를 준비하면서 학생지원처를 찾았다가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당시 담당 교직원은 외부 단체의 행사라는 이유로 허가를 거부했다. 외부 단체 주최지만 토론회 장소가 중앙대고, 다른 외부 단체들의 포스터는 허가하지 않느냐고 묻자, 고압적인 태도로 ‘원칙상’ 안 된다고 잘라 말했다. 언성이 높아지자 다행히 다른 교직원분이 좋게 이야기 하고 허가해주었지만, 생각할수록 황당한 일이었다.


과연 그 ‘원칙’이라는 게 뭔지 한창 궁금했던 차에, 지난 9월 학생지원처의 <교내게시물에 대한 관리원칙> 에 관한 공지사항을 읽게 되었다. 10월 말인 아직까지도 학교 홈페이지 메인에 큼지막하기 자리 잡으며 위압감을 주는 이 공지에는, <학교홍보물게시에 관한 시행규칙>이 첨부되어 있다. 나는 일련의 황당했던 경험들에 정당한 이유를 찾아줄 수 있겠구나-하는 부푼 기대를 안고 첨부파일을 열어 읽어 내려갔다. 하지만 웬걸, 이유를 찾기는커녕 의혹만 증폭됐다. 특정 정당과 관련된 게시물을 허가하지 않는 다는 규정은 안타깝게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이와 관련해서는 담당 직원의 사과와 해명이 분명 필요하다. 또한 ‘원칙상’ 거부되었던 토론회 포스터에 대한 원칙도 찾아볼 수 없었다. 만약 끼워 맞추기식으로라도 적용되는 원칙이 있었다면, 무조건 안 된다고 할 것 이 아니라 그 이유를 충분히 설명했어야 한다. 물론 끊임없이 게시물을 허가받기 위해 몰려오는 학생들 때문에 힘든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그런 학생들의 세세한 요구를 받아들이고 충분히 설명하는 것이 학생지원처의 존재이유가 아니겠는가.


시행규칙의 확인을 통해서는 정치적인 게시물에 대한 어떠한 원칙도 없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지원처에서 이에 민감하게 반응해왔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과연 ‘정치적인’ 것은 과연 무엇일까? 선거철이 되면 표를 행사하고,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집회에 참석하는 것만이 정치적인 것일까? 물론 신문의 정치면에서 주로 다루는 내용은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정치는 그보다 일상적이다. 가까운 학내를 예로 들면, 진중권 교수 해임 사태에서부터 도서관 옥상 흡연을 둘러싼 논쟁까지 모두 정치적인 사안들이다. 뿐만 아니라 앞으로 계속 될 학과 구조조정을 둘러싼 갈등이나 매년 반복되는 등록금 문제 역시 중요한 정치적 사안이다. 어쩌면 우리가 접하는 수많은 사건과 논쟁은 비정치적인 것보다 정치적인 것들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만약 학생지원처가 ‘정치적’인 이유로 게시물을 사전 검열하는 비원칙적인 관례를 답습한다면 우려를 할 수밖에 없다. 앞으로 있을 학과 구조조정이나 캠퍼스 이전 과정에서 생길 잡음을 애초에 차단하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비판도 이러한 지점에서 발생한다. 다행히 이번 공지를 통해 정치적 게시물에 대한 어떠한 원칙도 없음이 확인되었고, 앞으로 학생지원처가 전과 같은 행태를 반복하지 않을 것을 기대할 수밖에.


하지만 심각한 문제는, 시행규칙을 원칙적으로 이행할 때 생겨난다. 시행규칙 자체가 현실성이 떨어지고 납득할 수 없는 조항들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먼저 교내 단체 및 외부 단체 게시물에 대한 수량 제한(각각 3장, 5장)은 학교 규모와 건물 수에 비례해 터무니없이 적은 숫자다. 게다가 외부 단체 게시물은 찾아보기도 힘든 ‘외부전용 게시판’에만 부착할 수 있다. 외부 단체의 게시물에는 취업설명회, 교육프로그램에 대한 포스터들도 포함된다고 봤을 때, 유익한 정보에 대한 학생들의 접근권을 충분히 보장하지 못한다고 볼 수 있다. 이는 홍보물의 분류
가 현실적이지 못하고 모호해서 생기는 문제이기도 하다. 이러한 분류의 모호성으로 인해 게시물 허가에 대한 자의적 판단이 개입될 여지가 커질 수 있다. 1994년 당시의 상황에 맞춰 제정된 시행규칙을 15년이 지난 2009년에 덜컥 내놓고 지키라고 하는 것부터 무리인 것이다.


그리고 시행규칙 7조 1항
에 따르면 학교당국은 허가를 받지 않고 게시물을 부착한 학생을 징계할 수 있다. 입학 후 한번이라도 도장을 찍지 않고 게시물을 부착한 사람이라면 모두 징계대상자가 된다. 원칙대로 하자고 주장할 때는 분명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인데, 아마 학교 당국의 믿는 구석은 이 조항이 아닌가 싶다. 물론 지금껏 해왔던 것처럼 관례적으로 ‘봐줄 수’ 있지만, 그래서 더 위험하다. 얼마든지 마음만 먹으면 징계 대상자를 고를 수 있는 지나친 자의성이 개입되기 때문이다. 학교당국은 이미 지난여름 ‘징계퍼포먼스’를 통해 까딱하면 징계해버리겠다고 우리를 위협한 바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의 핵심은, 학교가 게시물을 통제한다는 것 자체에 있다. 지나친 게시물의 범람으로 인해 미관을 해치고, 학교 시설이 훼손될 수 있기 때문에 관리가 필요하다는 취지에 공감한다. 덕지덕지 붙어 있는 게시물은 지저분하기만 하고, 난자당한 페인트벽을 볼 때마다 나 역시 가슴이 아프다. 하지만 그 관리의 주체가 반드시 학교 당국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게다가 15년 전에 일방적으로 학교가 만든 규정이라면 더욱 더 필요 없다. 시위나 집회도 허가제가 아닌 신고제인데 무려 게시물 허가제라니, 글로벌스탠다드에도 맞지 않는다.


오히려 학교의 주인인 학생들 스스로가 게시물 부착 전반에 관한 원칙을 세우고 관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렇게 된다면 앞에서 언급한 우려들도 사라지게 된다. 우리가 머리를 맞대면 목소리를 자유롭게 낼 권리를 보장하고 더불어 게시물의 범람도 방지할 수 있는 현명한 방안을 내놓을 수 있다. 학생들의 대의체인 학생회는 이런 일을 하라고 선출한 것이다. 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해 합리적인 원칙을 세우고, 이를 실행으로 옮기는 것이 자치기구로서 학생회의 일이다. 우리들 스스로가 이러한 과정에 참여한다면 게시물 관리에 대한 불만도 줄고 학교 시설에 대한 애정과 책임은 높아질 것이다. 게시물 범람의 근본적 원인인 게시물의 크기를 사전에 조율하거나, 부착한 게시물을 스스로 제거해 청소부 아주머니의 일손을 덜어드릴 수도 있다. 꿩 먹고 알 먹고. 학생지원처 교직원들에게도 희소식이다. 매일 찾아와서 도장 찍어 달라고 떼쓰는 학생들이 없으니까, 이제 정말 학생을 지원하는 업무에만 충실할 수 있다. 누이 좋고 매부 좋고.


“우리 대학은 재단의 적극적인 의지와 후원 아래...”로 시작해 “무단게시물을 즉시 철거하고, 사안에 따라 게시자의 책임을 엄중히 물을 것입니다.” 에 볼드 처리 하고 밑줄까지 그으며 강조하는 공지사항은 자못 비장하기까지 하다. 재단의 적극적인 후원에서 무단 게시물 게시자 엄중 처벌로 이어지는 유려한 전개는 마치 리즈시절 심형래 감독의 영화를 보는듯한 스릴감을 선사한다. 도대체 이 공지사항의 숨겨진 저의가 뭐냐! 며 또 의심병이 도져서 씩씩 대다가, 역시 그 큰 뜻을 내가 어찌 알겠냐며 그저 학생지원처라는 이름 앞에 고개를 숙이게 된다.


"나는 당신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당신이 당신의 생각 때문에 탄압을 받는다면 나는 당신을 위해 싸울 것이다." 라는 볼테르의 말이 유행처럼 돌고 있다. 우리 학교도 예외는 아니다. 그렇지 않기를 바라지만, 만약 학교 당국이 게시물 관리 원칙을 빌미로 어떤 식으로든 표현의 자유를 탄압하려한다면, 학생들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힐 것이다.

이와 같은 주장은 중앙대 학생들의 강력한 의지이며, 좋은 환경에서 공부하고 연구하며 대학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우리의 정당한 권리에 대한 부응이다.*


다시 봐도 참, 명문이다.

 

* 조영금 <교내게시물에 대한 관리원칙>에서 일부 인용, 중앙대학교 학생지원처, 2009

 

 

 

 

 

 

 

2009/10/26 07:50 2009/10/26 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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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ote at 2009/10/28 15:18
그 지인은 나 아닌감요ㅋㅋ 이글루스에도 자리 맨드셨단 소식 들었어요. 오랜만에 들렀다 글 남겨요. 잘 지내죠 형?
elliott 
wrote at 2009/11/02 18:17
ㅇㅇ 그 지인은 당신이니 이번에 꼭 사과 받으세요. 잘 지내고 있음 ㅋ 물류업에서 어서 퇴직하고 퇴직금도 챙기시길. 고기사주고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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