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민 갈 이유 안 갈 이유가 반반이었다고 했지? 가기로 결심한 이유는 뭐야? 아빠랑 셋이 사는거?
- 네. 그리고 신애한테 그게 더 좋을 것 같아서.
- 신애?
- 언젠가부터 신애가 자꾸 저처럼 쪼그라드는 것 같아서요. 식탐 많던 애가 먹을 거 눈치를 보고, 아파도 병원갈 돈이 없을까봐 걱정하고, 그게 마음에 아팠어요. 그래서 가난해도 신애가 자유롭게 뛰어놀 수 있는 곳으로 가고 싶었어요.
- 안가고 싶었던 이유는?
- 검정고시 꼭 보고 싶어서, 그래서 대학도 가고, 아저씨 말대로 신분의 사다리를 한 칸이라도 올라가고 싶었어요. 근데 언젠가 또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그 사다리를 죽기 살기로 올라가면 또 다른 누군가가 그 밑에 있겠구나. 결국 못 올라간 사람의 변명이지만.
말 많고 탈 많았던 지붕뚫고 하이킥이 130회를 끝으로 종영했습니다. 여전히 말 많고 탈 많은 마지막회와 함께.
이 대사는 마지막회의 마지막 장면에서 세경과 지훈의 대화입니다.
이미 하이킥 결말에 대한 숱한 비난과 찬사, 공격과 변호들이 어지럽게 쏟아지는 상황에서
나 하나쯤 코멘트 더하는게 무의미와 유의미 사이를 오가고 있을때,
역시나 당장 몇 시간 앞둔 시험과 발표의 압박으로, 뭔가... 어지럽고 긴 글을 쓰게 되지는 않네요.
다만 마지막회, 마지막 장면, 세경이의 마지막 말들이 자꾸만 맴 돌아서 기어이 몇글자 끄적이고 싶어졌어요.

세경이가 이민을 결정한 첫번째 이유는 동생 신애입니다.
돈을 벌기 위해 멀리 떠난 아버지, 그리고 사회의 최빈곤층이라는 위기에서 가까스로 벗어나
순재네 집으로 들어오게 된 세경이와 신애의 이야기가 이 드라마의 출발이었습니다.
비록 가정부의 처지이기는 하지만, 두 자매를 가족처럼 (아니라고 생각하시면 어쩔 수 없습니다만ㅋ)여겨주는
순재네 가족 덕분에 경제적으로는 어느 정도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었지요
(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시면 어쩔 수 없습니다^)
다만 세경이가 이민을 결정하게 된 계기는 단순히 경제적인 조건의 문제이기에 앞서
동생 신애의 '마음'이었습니다.
정말 돈이 없어서 병원에 가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아프면 빌려서라도 가야죠)
돈이 없을 것을 걱정해 병원에 가지 못하고, 어린 마음에 상처를 받게될 신애를 세경이가 걱정했던 것이겠지요.
당장 무상급식 이슈만 떠올려 보더라도, 신애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모 패널이 100분토론에서 이야기 한 것처럼,
그리고 그렇게도 아이들의 무상급식 예산을 잘라내기 위해 악으로 달려드는 경기도의회 의원들이 이야기한 것처럼,
아이들이 정말 밥을 먹지 못하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밥을 먹기 위해 받아야 할 아이들의 상처를 공감해내는 것이 중요한 문제가 아닐까요.
세경이가 걱정했던 것은, 동생 신애의 작은 상처의 결들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봅니다.
신애의 마음이 "자유롭게 뛰어 놀 수 있도록"

세경이가 이민을 결정하게 된 두번째 이유는 검정고시에 대한 일종의 회의감때문이었습니다.
검정고시를 보고, 남들처럼 대학에 입학해 취직을 하고..
그래서 신분의 사다리를 한칸이라도 올라가고 싶었겠죠.
아마 대부분의 20대, 지금의 우리 세대가 직면해 있는 현실이 이와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서로를 짓밟고 오르기만을 강요하는 시스템,
그리고 가면 갈수록 좁아지는 사다리의 칸들을 향해 끊임없이 달려가는 사람들.
그 누구도 용기 있게 신분의 사다리를 놓지 못하고 있는 지금,
세경이는 그 누구보다 용기있는 선택을 해냅니다. (열심히 과외해준 준혁이가 불쌍해지네요 ㅋ)
최근 이슈가 되었던 고려대 경영대 학생인 김예슬씨의 대자보가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혹 누군가는 잃을 것이 아무것도 없는 세경이와 김예슬씨의 조건을 비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세경이가 놓아버린 것들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세경이는 자신을 사랑했던 사람과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놓아야 했습니다.
이것이 세경이가 이민을 결정하게 된 가장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지요.
이 내용은 아마 마지막회를 끝까지 보신 분들은 잘 아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
사실 이렇게 늘어놨지만...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세경이가 하고 싶어 했던 말,
세경이의 결정에 대한 오롯한 이유들은 아마 세번째 이유에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덤덤한 세경이의 말투 속에 묻어난 마지막 장면의 무게 때문에
대사 하나하나를 놓지 못하고 제가 미련하게 좀 늘어 놔버렸네요.
안정적인 사회적 기반이 흔들 거리는,
그리고 그 몫을 모두가 개인들이 감내해내야만 하는,
신세경 세대의 마지막회.
"시간이, 잠시 멈췄으면 좋겠어요."










